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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김계진 원장의 처방 이야기 74편 - 가미귀비탕, 가미소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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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비탕과 소요산을 하나씩 뜯어 보면 이 둘 사이의 접점이라고는 비허한 상태의 회복을 돕는다 정도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 비허한 것을 다스리는 방식도, 귀비탕은 이공산 형태인데 반해서 소요산은 삼백탕과 작약감초탕 개념으로 복통 설사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니 비허라는 진단명만 같지 발하는 증상 카테고리가 좀 다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처방이 혼동되는 이유는 이 두처방이 공히 칠정병 치료의 기본 구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칠정병을 다스리는 처방들은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비위의 문제를 조리한다. 내상이란 이야기입니다.  
2) 장부의 음혈을 조리한다. 칠정이 발하면 장부의 陰血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3) 장부의 화를 다스린다. 칠정이 발한다는 것은 火가 動했다는 것입니다. 
4) 울체를 다스린다. 칠정이 칠기가 되면 반드시 울체가 발생합니다. 

대략 위의 관점에서 처방을 다시 분석해 보겠습니다. 


         
  <귀비탕>                                               <소요산>
1)脾虛 인삼 백출 복령 감초                   vs    脾虛 백출 백작약 백복령 감초
2)脾統血 (出血) 황기 당귀                     vs   肝血燥 (月經不調) 당귀 작약
3)心火 (怔忡 健忘) 용안육 산조인 원지    vs    肝火 (五心煩熱) 시호
4)脾鬱 목향                                        vs    肝鬱 시호 작약 박하

 

대략 이런 형태로 칠정병 치료의 기본 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는 처방이 바로 귀비탕과 소요산입니다. 그래서 어떤 환자를 보는데 위 두 처방이 떠올랐다는 것은 이 환자가 칠정병으로 보였다는 것이겠지요. 다만, 두 처방의 기본 골격이 워낙에 달라서 사실 이 두 처방이 혼동될 이유는 처방 자체보다는 사실은 사변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사려과도인지, 간기울결인지가 혼재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죠. 생각이 많다는 것 자체가 뭔가 일이 안되니까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면 화도 나고 하는 것들이 모두 발생하면 이걸 쓰냐 저걸 쓰냐, 고민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그렇게 고민을 했지만, 지금의 귀비탕을 고안한 설기 선생님같은 경우에는 이런 혼란을 어떻게 해결하셨는가 살펴보면, 두 처방을 그냥 동시에 사용합니다. 오전에는 귀비탕 오후에는 소요산 이렇게 쓰거나, 귀비탕을 한 달 정도 쓰고 소요산을 이어서 한 달 정도 더 쓰거나 이런 식으로 그냥 같이 쓰십니다. 동시에 두 처방을 쓰는 경우들도 비일비재하셨습니다. 이게 진단이 안 돼서라기보다는 이 둘이 같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겠죠. 

 

거기에, 가미귀비탕 혹은 가미소요산(팔미소요산)이라는 처방으로 들어가면 이 두 처방이 사뭇 닮아 갑니다. 가미귀비탕은 귀비탕에 시호 치자를 가미한 것이고, 가미소요산은 소요산에 치자 목단피를 가미한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가미하면서 가미귀비탕은 肝鬱 肝火를 다스리는 공효가 부가되고, 가미소요산은 心火를 안정시키는 작용이 더해지면서 이 두 처방이 좀 더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죠. 이 역시 사려과도와 간기울결의 경우가 같이 발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반증입니다. 

 

《東醫寶鑑》 內景篇卷之三 > 胞 > 通血治法 > 加味歸脾湯
"간비(肝脾)에 노기가 울체되어 월경이 나오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 귀비탕에 시호ㆍ치자인 각 1돈을 더한 것이다. 이 약들을 썰어 물에 달여 먹는다. 《양방》" 

 

설명만 보면 귀비탕인지 소요산인지 모호해지죠? 동일 조문에서 귀비탕과 가미귀비탕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비위의 울화로 혈이 소모되어 월경이 나오지 않을 때는 귀비탕을 써야 하고, 성을 내어 간비(肝脾)가 막혀 혈이 상하여 월경이 나오지 않을 때는 가미귀비탕을 써야 한다. 《양방》" 울체가 비위에 있으면 귀비탕을 쓰되, 간비가 막히면 가미귀비탕을 쓰라고 했네요.  

 

그리고 肝脾가 막힐 때 많이 써왔던 처방이 소요산이다 보니 이 지점에서 두 처방이 개념상으로 만나는 지점이 발생하게 됩니다. 위의 글을 보면 마치 귀비탕과 가미귀비탕이 구분되어 써야 하는 처방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귀비탕을 써야 할 사람이 怒氣가 겸하면 가미귀비탕을 쓰는 것이지요. 소요산을 써야 할 사람이 火가 치성해지면 가미소요산(단치소요산)을 쓰는 것이구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귀비탕과 소요산 경우만 잘 판별해도 되는데, 큰 범주에서 구분한다면 귀비탕은 七情病 치법에 가깝고, 소요산은 七氣病 치법에 좀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귀비탕은 補血한다고 하고, 소요산은 말 그대로 鬱을 풀어서 逍遙하게 한다고 합니다. 

 

위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진맥상태로도 구분이 가능하고, (귀비탕은 비경울체가 시발이 되므로 비위 맥이 울체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나고, 소요산은 간기울결이 시발이 되므로 현맥이 완연한 차이가 납니다.), 병증 문진을 꼼꼼하게 해도 구분이 어렵지 않습니다만, 

설명을 가장 쉽게 하는 걸로 본다면 아래 방식이 가장 심플한 것 같습니다. 저도 많이 활용하는 구분법입니다. 

 

스트레스받으면 변비가 잘 생긴다고 그러면 귀비탕을 먼저 씁니다. 
스트레스받으면 설사가 잘 생긴다고 그러면 소요산을 먼저 씁니다. 
스트레스받으면 변비와 설사가 다 생긴다고 그러면 소요산을 먼저 씁니다. 

 

아마 설기 선생님 같으면 두 처방을 동시에 쓰셨을 것 같아요. 오전에는 귀비탕 오후에는 소요산 이렇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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